TITLE: 45도 폭염 속 델리 빈곤층: 생존이 먼저, 안전은 나중
META: 인도 델리의 극단적 폭염이 빈곤층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심층 분석합니다. 기후 불평등, 도시 열섬 효과, 그리고 생존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TAGS: 델리폭염,기후불평등,인도빈곤층,극한기후,기후위기
CATEGORY: 국제·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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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도 폭염 속 델리 빈곤층: 생존이 먼저, 안전은 나중
온도계가 45도를 넘어서는 순간, 도시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뉩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 인도 델리의 여름은 매년 이 분열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가시화합니다. 냉방이 완비된 사무실에서 기후변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스팔트 위에서 파라타를 굽거나 철근을 나르는 사람들은 그 기후변화의 최전선을 맨몸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며 델리의 여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극단적인 수치를 갱신해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더위가 아닙니다. 습구온도(Wet Bulb Temperature)가 인체의 생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까지 치솟으면, 인간의 몸은 더 이상 스스로를 식힐 수 없게 됩니다. 그 한계선 위에서, 빈곤층은 오늘도 살기 위해 일하러 나갑니다. 쉬면 굶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단순히 ‘인도가 덥다’는 기상 뉴스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폭염이 어떻게 계급의 언어로 번역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후 위기’라고 부르는 거대한 이름 뒤에 얼마나 구체적이고 얼굴을 가진 비극들이 숨어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배경: 왜 델리의 폭염은 유독 잔인한가
지리적·기후적 조건이 만들어낸 열의 감옥
델리는 지리적으로 이미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북인도 평원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히말라야 산맥에 막혀 북쪽으로부터 오는 냉기를 거의 받지 못합니다. 반면 라자스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루(Loo)’ 바람은 매년 5월에서 6월 사이 도시를 강타합니다. 기온이 45도를 넘기는 날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제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 계절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에 도시화가 가속화한 ‘열섬 효과(Urban Heat Island Effect)’가 겹칩니다. 녹지가 사라진 자리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들어섰고, 이 인공 지표면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새 내뿜습니다. 델리 외곽의 농촌 지역보다 도심의 밤 기온이 4~6도 이상 높게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는, 야간에도 몸을 회복하지 못하는 빈곤층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이터로 읽혀야 합니다.
인도 기상청(IMD)에 따르면, 델리의 폭염 발생 빈도는 1970년대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평균 기온 상승보다 더 무서운 것은 최고 기온의 극단화, 즉 정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후 과학자들은 기온의 평균이 1도 오를 때 극단 기후 사건의 빈도는 수배로 증폭된다고 경고합니다. 델리는 그 경고가 이미 현실이 된 도시입니다.
인구 구조와 불평등의 교차점
델리의 공식 인구는 약 3,200만 명. 그러나 이 숫자 안에는 매우 이질적인 삶의 층위가 공존합니다. 구르가온의 유리 건물 안에서 일하는 IT 전문직, 사우스 델리의 고급 주거 단지 주민들, 그리고 야무나 강변의 슬럼 지구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주 노동자들이 같은 도시의 시민입니다. 이들에게 45도의 폭염은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인도 도시 빈곤층의 상당수는 비공식 경제 부문에 종사합니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 릭샤 운전사, 노점상, 가사 도우미, 폐지 수거인. 이들은 고용 보험도, 병가도, 재난 수당도 없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그날의 식비가 사라집니다.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에도 이들의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입니다.

핵심 분석 1: 폭염은 어떻게 빈곤층의 신체를 무너뜨리는가
열사병은 ‘의지의 부재’가 아닌 구조적 결과다
2024년 6월, 델리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야외 노동자였습니다. 인도 보건부의 공식 집계는 항상 실제 사망자 수를 크게 밑돈다는 것이 역학 연구자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열사병으로 인한 직접 사망 외에도, 폭염이 기저 질환을 악화시켜 발생하는 ‘초과 사망(Excess Mortality)’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몇 배로 뛰어오릅니다.
열사병(Heat Stroke)은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면 시작됩니다. 뇌와 장기가 손상되고, 치료가 지연될 경우 사망률은 80%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열사병의 발생은 단순히 ‘더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수분 섭취 가능 여부, 그늘의 유무, 작업 강도, 수면의 질, 영양 상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빈곤층은 이 모든 조건에서 불리합니다.
- 수분 섭취: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이며, 일터에서 물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 그늘과 휴식: 건설 현장이나 도로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제도적으로 보장된 휴식 시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 수면: 철제 지붕 아래 빽빽이 들어선 슬럼의 밤 기온은 40도 가까이 유지됩니다.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 다음 날 노동에 투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 의료 접근성: 열사병 증상이 나타나도 공공 병원까지의 거리, 대기 시간, 치료비에 대한 두려움이 의료 접근을 늦춥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연재해’라고 부르는 것들의 상당수는, 사실 사회가 특정 집단을 위험에 노출시키기로 묵시적으로 선택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폭염은 공평하게 내리쬐지만, 그 피해는 결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노인이 치르는 더 가혹한 대가
성인 남성 노동자보다 더 취약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슬럼 지구의 아이들은 학교가 문을 닫는 폭염 기간에도 집 밖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양철 지붕 아래의 공간은 낮 동안 오븐에 가까운 온도를 유지합니다. 인도 소아과학회(IAP)는 5세 미만 아동의 열 관련 질환 발생률이 성인 대비 3배 이상 높다고 보고합니다.
노인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연금도 없고 냉방도 없는 노인들이 홀로 좁은 공간에 남겨지는 광경은 델리 여름의 일상입니다. 프랑스가 2003년 폭염으로 1만 5천 명의 노인을 잃은 뒤 사회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한 것과 달리, 인도의 폭염 대응 체계는 여전히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핵심 분석 2: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은 하지 않고 있는가
폭염 행동 계획의 명과 암
인도 정부와 델리 주정부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는 2013년 이후 ‘열 행동 계획(Heat Action Plan, HAP)’을 도입해, 폭염 경보 시스템 구축, 쿨링 센터 운영, 학교 휴교령 등의 조치를 시행해 왔습니다. 아메다바드(Ahmedabad)의 HAP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모범 사례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델리의 현실은 그 성과와 거리가 있습니다. 쿨링 센터는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위치가 빈곤층 거주 지역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낮 시간에 쿨링 센터를 이용하려면 그 시간 동안 일을 멈춰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에게 그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제도가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2024년 인도 총선이 극심한 폭염 속에 치러졌을 때, 투표소 인근에서 열사병으로 수십 명의 선거 관리 요원이 쓰러진 사건은 국가의 폭염 대응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정치적 이벤트에도 보호받지 못한다면, 익명의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을 것입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와 비공식 경제
인도 노동법은 극한 기온에서의 야외 노동을 규제하는 조항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노동력의 90% 이상이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현실에서, 이 법률은 사실상 종이 위의 문자에 가깝습니다. 고용주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오늘은 기온이 높으니 쉬어도 됩니다’라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쉬면 내일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더위는 무섭지만, 굶는 것은 더 무섭습니다.” — 델리 건설 현장 노동자 인터뷰 (로이터, 2024년 6월)
이 한 문장 안에 델리 빈곤층 폭염 문제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 이것이 구조적 폭력입니다. 기후 변화가 만들어낸 자연적 위험에 사회적 불평등이 겹쳐질 때, 그 결과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예고된 참사입니다.

핵심 분석 3: 기후 불평등의 글로벌 지형도
가장 적게 배출하고 가장 많이 고통받는 역설
인도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미국의 약 8분의 1, 한국의 약 6분의 1 수준입니다. 델리 슬럼 지구의 빈곤층은 탄소 발자국으로만 따지면 지구상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집단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후 위기의 가장 심각한 피해를 오늘, 지금, 이 순간 겪고 있습니다.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담론이 이 역설을 오랫동안 조명해 왔습니다. 산업화의 혜택을 충분히 누린 선진국들이 만들어낸 탄소 부채를, 그 혜택에서 소외된 나라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신체로 갚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구조적 부정의입니다.
국제 기후 협상의 장에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이 논의되고, 2022년 COP27에서 마침내 그 설립이 합의되었지만, 실제로 델리 건설 현장 노동자의 삶을 바꾸기까지는 아직 요원한 거리가 있습니다. 합의와 실행 사이의 간극에서, 사람들은 계속 쓰러집니다.
남아시아 폭염의 광역화와 지역 연쇄 효과
델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2년 남아시아 폭염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북부 전역을 동시에 강타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 폭염이 기후 변화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사건이라는 귀인 분석(Attribution Study)을 발표했습니다. 2025년 현재, 남아시아의 평균 폭염 강도와 지속 기간은 계속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이 광역화된 폭염은 농업 생산성에도 직접적 타격을 줍니다. 밀 수확량이 급감하면 식량 가격이 오르고, 도시 빈곤층의 식비 부담이 늘어나며, 일부는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많은 시간 일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기후 위기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맞물린 위기들의 연쇄입니다.
다양한 시각: 전문가와 현장, 그리고 정치의 온도차
기후 과학자들의 경고
MIT 기후 연구팀은 2020년 발표한 연구에서, 현재 추세가 유지될 경우 21세기 말 남아시아의 일부 지역은 인간이 야외에서 생존할 수 없는 ‘거주 불가능 지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임계점은 습구온도 35도. 이 수치를 단 6시간만 경험해도, 건강한 성인도 사망할 수 있습니다. 델리 일부 지역은 이미 그 임계점에 간헐적으로 도달하고 있습니다.
인도 공중보건 연구자 디비야 다완(Divya Dawan) 박사는 폭염 사망자 통계의 심각한 과소 집계를 지적합니다. 열사병으로 사망해도 심부전이나 신부전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허다하며, 이는 정책 우선순위 설정을 왜곡시킨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데이터가 보이지 않으면, 문제도 보이지 않습니다.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
비정부기구(NGO)와 노동 권리 단체들은 폭염을 기후 문제인 동시에 노동 문제로 규정합니다. 인도의 노동 권리 단체 ‘잔 사하스(Jan Sahas)’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을 위한 폭염 지원 지침 마련과 함께, 극한 기온 발령 시 유급 휴가를 보장하는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더위가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은 조직화가 어렵고, 정치적 대표성도 낮습니다. 선거에서 유권자로는 존재하지만, 정책 의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정부의 프레임과 그 한계
인도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는 폭염을 주로 ‘공중 보건 비상 사태’의 언어로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에게 물을 충분히 마시고 외출을 자제하라고 권고하는 방식입니다. 이 프레임은 구조적 원인을 개인의 행동 책임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가집니다.
물론 개인 차원의 예방 수칙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출을 자제하면 생계가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외출을 자제하세요’라는 메시지는,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맹점을 드러냅니다. 폭염 대응의 무게 중심이 개인 행동에서 사회 구조로 이동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국과 글로벌 시각: 우리는 이 문제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가
한국의 폭염과 취약 계층
델리의 이야기가 머나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국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2018년 한국의 폭염은 ‘역대 최악’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48명의 온열 질환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이 사망자들의 다수는 실외 노동자, 홀로 사는 독거 노인, 쪽방촌 거주자였습니다. 에어컨이 없거나, 있어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켜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역시 폭염을 기상 재해로 공식 지정하고 있지만, 취약 계층 지원 시스템의 실효성은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쪽방촌 무더위 쉼터, 독거 노인 안부 확인 전화, 에너지 바우처 등의 제도가 존재하지만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반복됩니다.
글로벌 공급망과 폭염의 연결고리
우리가 구매하는 제품들을 만드는 손들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아시아의 섬유 공장, 건설 현장,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최하단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을 감내합니다. 이들의 노동이 우리 소비의 일부를 지탱하고 있다면, 그들이 처한 기후 취약성은 우리와 무관한 타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공급망 실사 지침(CSDD)은 기업이 자사 공급망 전반의 인권과 환경 영향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후 취약성 속에서 강요된 노동이 글로벌 기업의 윤리 의제로 올라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독자를 위한 핵심 포인트 정리
- ✅ 폭염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같은 온도도 어디에 사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위협이 됩니다.
- ✅ 기후 불평등은 기후 문제인 동시에 계급 문제입니다. 가장 적게 배출한 이들이 가장 많이 피해를 입는 역설이 지속됩니다.
- ✅ 제도는 있지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법과 정책의 존재가 곧 보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비공식 노동자에게 제도는 사각지대입니다.
- ✅ 사망자 통계는 과소 집계됩니다. 폭염 관련 사망은 심부전, 신부전 등으로 기록되어 실제 규모가 가려집니다.
- ✅ 남아시아 폭염은 광역화되고 있습니다. 델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로 이어지는 지역적 위기입니다.
- ✅ 한국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폭염 취약 계층의 구조는 다르지 않으며,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우리는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무리: 45도의 진실
온도계는 숫자를